도시 방학: 홍콩 #3

10년 차 홍콩 로컬이 추천하는 '여긴 어때 홍콩'

동양과 서양이 혼재하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도시, 홍콩. 홍콩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덴 초고층 빌딩 사이사이를 지키는 오래된 건물들의 역할이 큽니다. 대표적인 고급 주거지역인 미드레벨만 하더라도 1970년도에 지어진 아파트가 허다하고 2000년대에만 지어졌어도 신축 대접을 받는다고 해요. 허물고 다시 짓는 것보다는 일단 한 번 지은 건물은 고쳐 쓰는 것에 익숙하고요.

더 밀스(The Mills)

그런 홍콩에선 ‘도시 재생’이라는 티를 내지 않고도 역사적 건축물을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게 흔한 일인데요. 이번에 소개할 더 밀스(The Mills)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붉은색 츈완 라인을 타고 종점인 츈완역에 내려서 15분 정도 걷다 보면 모던한 디자인의 창고형 건물이 나타납니다. 쇼핑몰과 박물관이 융합된 이곳은 예전에 방직 공장이었다고 해요. 폐업 후 방치된 공간을 리모델링했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존 어워드에서 문화유산 뉴디자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련된 쇼핑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곳곳에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어요. 더 밀스 내 섬유유산센터에서는 과거 방직 공장에서 사용했던 베틀을 비롯한 다양한 방직기와 의류 제작 과정을 전시하고 있어요. 1950년대 아시아 최대의 섬유산업 거점이었던 홍콩의 또 다른 얼굴을 생생히 전달해 주고 있지요.

더 밀스는 프렌들리 펫 구역이기도 해요. 이곳에서는 반려동물이 정모(?)를 하거나 생일파티를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반려동물을 데려가지 않아도 귀여운 아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요. 그런 만큼 펫 용품을 파는 숍도 많고요.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 주요 관광지와는 동떨어져 있긴 하지만, 분명 더 밀스에서 새로운 홍콩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타이쿤(Tai Kwun, 大館)

관광객의 필수 코스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뜻밖의 유럽풍 광장을 만나게 됩니다. 타이쿤은 광둥어로 ‘큰 감옥’이라는 뜻으로 한때 경찰 본부이자 교도소, 법원이었던 역사적 공간을 리모델링한 곳이에요.

실제 감옥을 그대로 남겨놓아 170년 전 감옥을 체험할 수도 있고요, 개조된 감옥에서 시원한 칵테일이나 맥주를 한잔하는 이색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광장에 테라스를 내놓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야경을 즐겨도 좋고, 각종 전시도 상시 진행 중이라 언제 방문해도 즐길 거리가 있어요. 물론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광장 주변에 그냥 앉아 있는 것이지만요. 한참 멍을 때리고 있다 보면 여기가 홍콩인지 유럽 어느 도시인지 헷갈릴지도 몰라요.

PMQ

PMQ(Police Married Quarters, 前荷李活道已婚警察宿舍)는 1951년 홍콩 경찰의 기혼자 숙소로 사용되었던 건물입니다. 경찰 가족들이 살았던 곳이죠. 2000년대 이후 빈 건물로 남겨졌다가 2014년 디자인과 창작 산업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리모델링되었습니다. 지금은 개성 넘치는 로컬 브랜드, 아티스트들의 작업 스튜디오, 디자인 숍,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입점해 있고, 한국문화원도 이곳에 있어요.

넓은 중앙 광장에서는 때마다 이벤트가 열리며, 과거 경찰 가족들의 생활공간 또한 그대로 보존‧전시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요. 입점한 공방에서 각종 공예 체험도 가능하고, 한정판이나 좋은 품질의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미식의 도시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보게 됩니다. 유명한 식당은 언제나 긴 줄이 서 있는 거예요. 아무리 유명한 곳이지만 여행 중에는 시간도 소중한 자원입니다. 인내를 발휘하여 목적지에 입성하는 것도 좋지만, 임기응변을 발휘해 줄 서는 유명 식당에 버금가는 곳을 찾아가는 건 어떨까요?

줄 서는 식당: 카우키 누들 레스토랑(九記牛腩)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소개한 ‘양조위 맛집’ 카우키 누들은 일체의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시간을 들여서만 입장할 수 있는 곳이에요. 회전율이 높기는 하지만 더운 여름에는 잠깐의 줄서기도 현기증 나는 일이죠. 그래서 카우키 누들 주변으로 대신 갈 만한 곳들을 소개합니다.

자긴 소바(Zagin Soba)

자긴 소바는 오사카에서 온 닭백숙 베이스의 라멘집입니다. 짭조름하고 카푸치노처럼 크리미한 육수에 잘 튀겨진 우엉 튀각과 부드러운 편육이 올라간 국수가 이 집의 시그니처예요. 카우키에 비하면 비싼 편이지만, 치킨 베이스의 일본식 라멘은 홍콩에서 전문점을 찾기 어려우니 면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경험해 볼 만한 메뉴랍니다.

자긴 소바 역시 유명한 맛집이라 줄을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관광객보다는 현지인 위주로 알려졌기 때문에 카우키 누들보다 줄이 짧을 가능성이 높아요. 카우키 누들에 줄을 서다가 고개를 빼꼼 내밀면 충분히 염탐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자긴 소바의 줄이 더 짧다면 과감하게 식당을 갈아타도 후회 없을 거예요.

마루 드 산가쿠(Maru De Sankaku)

마루 드 산가쿠는 도미 육수 라멘 전문점으로 고소한 생선의 풍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맛집입니다. 하얀 국물은 고소하고 크리미하고, 맑은 국물은 담백하고 개운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라 면발은 조연 취급을 받는 국숫집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면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요. 남김없이 먹고 나면 충분히 몸보신한 느낌이 들 거예요.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마루 드 산가쿠에도 대기 줄이 있을 때가 많지만, 카우키 누들보다는 빠르게 들어갈 수 있답니다.

줄 서는 식당: 침차이키 누들샵(Tsim Chai Kee Noodle)

센트럴에 있는 완탕 누들집인 침차이키 누들샵도 툭하면 긴 줄이 늘어서는 곳이죠. 홍콩섬 필수 관광 코스로 꼽히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인근에 있고, 미슐랭 마크가 훈장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여행자 입장에선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내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번 소개되었기 때문에 대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의 경쟁자가 우리 동포라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슬쩍 홍콩 여행 고수 티를 내 보는 게 어떨까요?

막스 누들(Mak's Noodle, Mak Un Kee)

침차이키 바로 건너편에는 왕년에 침차이키가 도전장을 던졌던 완탕 누들샵의 원조격, 100년 역사의 막스 누들이 있습니다. 192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센트럴에서 노점상으로 시작했던 막스 누들은 현재 3대째 100년의 맛을 유지하며 홍콩은 물론 싱가포르에도 지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막스 누들이 오히려 침차이키의 명성에 기대는 후발주자라고 오해하기 십상이라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막스 누들은 깔끔하고 진한 새우 베이스의 국물과 꼬들꼬들하게 익힌 에그 누들이 찻잔 모양 그릇에 한가득 담겨 나와요. 완탕의 만두피도 매우 부드럽고, 새우와 돼지고기의 조화도 훌륭해요.

줄 서는 식당: 란퐁유엔(蘭芳園)

홍콩을 대표하는 전통 차찬텡(茶餐廳)으로 영원한 따거 저우룬파(주윤발)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한 란퐁유엔. 아주 고운 필터에 여러 번 거른 홍차로 만든 전통 홍콩식 밀크티와 버터 올린 프렌치토스트, 닭고기구이 등 고기 토핑을 올린 인스턴트 누들 볶음이 유명한 곳이에요. 란퐁유엔은 왁자지껄한 차찬텡 분위기를 즐기기 좋은 곳이지만, 역시 문제는 줄이 길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대체할 장소가 있습니다.

신지신곡(先滋先覺)

란퐁유엔 옆으로는 꽃을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는데요, 꽃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입구가 하나 있습니다. 가만 보니 식당이네요. 란퐁유엔 옆집 차찬텡, 신지신곡(先滋先覺)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현지인이 가득하긴 한데 그래도 빈자리가 한둘은 보여요. 가족이 운영하는 것인지 그저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춘 식당의 직원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점원들은 친밀하면서도 시곗바늘처럼 서로의 역할을 딱딱 맞춰 완벽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손님에게도 친절하고요.

신지신곡도 홍콩식 밀크티, 프렌치토스트, 인스턴트 누들 볶음 등 차찬텡의 기본 메뉴를 모두 갖추고 있어요. 사실 란퐁유엔과 거의 차이가 없답니다. 하지만 유명세를 타지 않은 덕에 대기도 없고, 음식도 맛있고, 친절함까지 모두 갖추고 있지요. 주윤발 형님을 우연히 볼 수 있다면야 란퐁유엔에 무조건 입성해야겠지만, 홍콩 차찬텡 문화를 좀 더 차분하게 즐기고 싶다면 신지신곡에 들어가 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홍콩의 차찬텡을 소개하니 진한 홍콩식 밀크티가 그리워지네요. 한국에서도 밀크티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홍콩 현지의 맛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영국식으로 고급스럽거나, 어딘가 심심하거나, 아니면 너무 RTD(Ready to Drink)스러운 맛이거나…. 아무튼 원조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주에 진짜 홍콩식 밀크티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답니다. 제주도도 물 건너가야 하는 곳이지만 아무튼 홍콩보다는 가까우니까요.

Hongkong to Jeju

카페 블루 하우스

관광지라기보다는 신도시 그 자체인 제주시 아라일동에 정통 홍콩식 밀크티를 선보이는 카페 블루 하우스가 있습니다. 카페 블루 하우스는 현지 재료를 공수하는 건 물론, 스테인리스 포트에 융으로 찻잎을 우리는 홍콩 방식 그대로 밀크티를 끓여줍니다. 홍콩 여행 중 마셨던 현지 밀크티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어쩜 이렇게 구현을 잘하셨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께서 홍콩 출신이라고 하네요. 홍콩에서는 금융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는데 한국에 스키 여행을 왔다가 강사였던 남편분을 만나 결혼에 골인했고, 한국으로 이주해 블루 하우스를 여셨다고 해요. 홍콩에서 요식업에 종사하셨던 건 아니지만, 줄곧 먹어 왔던 밀크티 맛은 멋지게 재현해 내셨습니다.

카페 블루 하우스가 반가운 건 밀크티에 커피를 섞은 동윤영까지 있다는 점이에요. 저처럼 밀크티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커피도 찾게 되는 사람에게는 홍콩에서도 꿀 같은 음료였지요. 쌉쌀한 홍콩 밀크티 아이스크림도 추천할 만한 메뉴입니다.

요깃거리로는 파니니가 있는데, 버터 올린 눅진한 프렌치토스트가 있었다면 진짜 금상첨화였을 것 같아요. 아라일동에 본점이 있고, 동문시장점, 서귀포 올레시장점, 그리고 서귀포 중앙로터리 부근에 서귀포점이 있어 여행 중 동선 맞추기도 좋을 거예요.

카페 블루 하우스

제주 제주시 아란1길 57 카페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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